배경

이산면 질골
고향의 유래

경북 영주시 이산면 지동1리, 400년 세거지(世居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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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골, 산골 깊은 곳의 마을

경북 영주시 이산면 지동1리, 긴 골짜기에 자리한 고향
질골은 영주시 이산면 이산우체국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산골 마을이다. 영주 시내에서 이산로를 따라가다 석포교를 건너고, 이산우체국에서 지동1리 방향으로 접어들면 소바우마을을 지나 남양마을에 닿는다. 그 너머로 샛마, 큰마, 탑골이 이어지며, 이 모든 마을을 아우르는 이름이 바로 '질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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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골의 행정 변천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600년 역사의 땅
1413년(태종 13년) 8도제 정비 때 이 지역은 경상도 영천군 동면에 속했다. 이후 조선 중기에 영천군 말암면 지동으로, 1896년 13도제 개편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지동리로 바뀌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산이면, 어화면 일부와 말암면이 합쳐져 '이산면'이 되었고, 질골은 영주군 이산면 지동리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지동1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남양마을에서 옥녀봉까지 약 2.3km에 걸쳐 마을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시대 고찰이 두 곳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질골 풍경
질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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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골'이라는 이름

긴 골짜기에서 비롯된 두 가지 유래
질골이라는 지명에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남양마을 입구에서 옥녀봉(해발 365m)까지 골짜기가 길게 뻗어 있어 '긴골', 곧 '질골(長谷)'이 되었다는 것이다. 옛말에 '길다'를 '질다'로 발음했기에 '긴골'이 자연스레 '질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 뒷산에 지초(芝草)가 무성하여 '주지봉(朱芝峰)'이라 불렀고, 그 지(芝)자를 따서 '지곡(芝谷)'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질골'로 변했다는 설이다.

한편 마을 동쪽 남양산 중턱에는 신라시대 고찰 '남양사(南陽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지만 이 절의 이름이 남양마을의 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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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골의 밀양박씨

400년을 이어온 뿌리, 송당 박영의 후손
질골에 터를 잡은 밀양박씨는 강계부사와 동부승지를 역임한 문목공 송당(松堂) 박영(朴英)의 후손이다. 송당의 12세손 시봉(時鳳, 1590년경 출생 추정)이 임진왜란 이후 선산을 떠나 안전하고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이곳 남양마을에 정착한 것이 시초이다. 족보에 시봉 선조의 생몰 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친 명준(命俊)의 생몰이 1564~1626년으로 기록된 점을 미루어 보면 1610년경으로 추정된다. 밀양박씨가 이 땅에 뿌리내린 지 어언 400년이 넘는 셈이다.

한때 3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고, 제사 때면 수십 명이 마당에 모여 잡곡밥이나마 음복을 나누었다. 어른들은 손자들의 글공부를 독려하며 '선비를 키워야 한다'는 가풍을 이어갔고, 그 뜻 아래 자란 후손들은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